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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간이식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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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한수 읊다..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别涙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긴 강둑에
풀빛 짙어 가는데
남포에서 임을 보내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르리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보태질 텐데..」
고려 중기 문신 시인.자가 彦平. 호가 南湖.
‘平壤鄭氏’의 시조.고려 인종(1122-1146) 때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풍운아 시인.
“鄭知常-정지상(? -1135)”이 지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送人(송인)--임을 보내며)]이라는
시상이 참신하고 아름다워 만고의 절조(絶調)로
꼽혀 왔으며,또한 후세 사람의 차운시가 많기로도
유명한 이별을 노래한 절창의 작품입니다.
1114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남호-정지상’'은
벼슬길에 나선 후,‘妙淸묘청(?-1135.術僧)’,
'白壽翰백수한(?-1135)’등과 함께
당시의 “혼란한 내외정세를 이용하여
서경(평양)출신의 신진세력이
기존의 ‘이자겸’에서 부터 내려 온 뿌리깊은
사대보수 개경(開城)출신 구신세력을 꺽기 위해
시도한 난(묘청 등이 일으킨 난)”은
자주권의 회복운동으로 볼수 있지요.
이렇게 발단된 “妙淸의 亂(1135년)''의 당시
진압군 사령군으로 사대주의자 “金富軾(김부식
1075-1151)”이 임명되게 됩니다.
서경으로 난을 진압하기 전에 개경(개성)에 있던
‘鄭知常(정지상)’을 비롯한 ‘金安’,‘白壽翰’등을 참살
하고, '妙淸’을 제거. 난을 평정한 후,
김부식은 1145년.71세에 인종의 명을 받아
그 유명한[三國史記]를 편찬.일생을 마감합니다.
'정지상'은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각 분야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또한 그림·글씨에도 능통한 인물이
왕의 재가도 없이 참살(1135년)되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 하더라도
고민과 모색,타협과 협치 등 이를 아우르는
대화와 통섭(通涉)의 길이 아쉬워 지네요!..
..연필스케치로
방배골 巢一齋에서
놀공자 潭然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