宮中美人-구중궁궐의 꽃《凌霄花(능소화)》
“飜手作雲覆手雨 번수작운복수우
紛紛輕薄何須數 분분경박하수수
君不見管鮑貧時交 군불견관포빈시교
此道今人棄如土 차도금인기여토”
「사람 사귀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니
이 많은 경박한 무리들을
어찌 다 헤아리리요.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한 시절 사귐을
이런 도리를
요즘 사람들은 흙같이 버리네..」
중국 唐(盛唐)나라 시인으로 李白(詩仙)과
李.杜로 이름을 나란히 한 자가 ‘子美’, 호가 ‘少陵’
또는 ‘杜工部(두공부)’ “詩聖(시성)”으로 별칭 된
“杜甫두보( 712-770)”의
[貧交行(빈교행)--貧賤之交(빈천지교)의 노래]
이라는
약 1400여 년 전(두보 생전) '*관포지교''의
교우관계 사례를 들어 요즘 사람들은 이런 도리를
흙같이 버리는 것을 통탄해 읊은 시입니다.
*管鮑之交(관포지교); 옛날 중국(中國)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처럼
친구(親舊)사이의 매우 다정(多情)하고 허물없는
교제(交際)를 의미하는 말임.
중국 춘추시대 초엽, 제(齊)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라는 두 관리가 있어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죠.
관중(BC 725-BC 645)은 훗날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죠.
''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그는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벼슬길에 나갔다가 물러나곤 했지만,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老母)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 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牙)''라고
참으로 이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가!..
이 管鮑之交(관포지교)의 행실을 차용한
'두보'의 당나라 그 시절을 한탄하고 있음을 읽어
볼 수 있겠죠.
管鮑之交(관포지교)의 아름다움의 스토리속에
人心朝夕變 山色古今同
(인심조석변 산색고금동)이라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變)하나,
산의 빛깔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라는 말을
오늘의 현실에 비쳐 읊조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