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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72] 눈 온 후

박무용 2022-02-09 조회수 229

겨울스케치

"雪後山扉晩不開   설후산비만불개
 溪橋日午少人來   계교일오소인래
 篝爐伏火騰騰煖   구로복화등등난
 茅栗如拳手自煨   모율여권수자외"

「눈 온 뒤라 산 사립문은
 늦도록 열지 않고

 시내 다리 한낮인데
 오가는 사람 적구나.

 화로에 묻힌 불은
 열기가 대단하여

 주먹만한 산밤을
 홀로 구워 먹네..」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경기도 포천출신.경주이씨.
 자는 자상(子常), 호를 백사(白沙), 필운(弼雲),
 청화진인(靑華眞人), 동강(東岡), 소운(素雲),
 고려말의 익재-이제현의 후손.
 권율장군의 사위이기도 한

“李恒福이항복(1556-1618)”의 지은
         
 [雪後(설후)--눈 온 후]라는

 63세로 북청 유배지에서 말년의 고독한 절망감을
 표현하여 이항복 문학의 진수를 보여 준 한시입니다.

''백사-이항복''은 1580년(선조13), 25세로 알성문과
 병과 급제로벼슬길에 들어서면서

 1583년 대제학 이이의 천거로 이덕형(1561-1613,
 자-명보.호-한음,광주이씨,이산해의 사위)과 함께 
 사가독서를 하면서 훗날 함께 재상이 된 이덕형과
 돈덕한 우정을 유지하여 '오성과 한음'이라는
 일화를 만들어 냈지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승지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위해 오성군에 봉해졌으며, 두 왕자를 
 평양까지 호위해 형조판서에 특진했고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했으며
 5차례에 걸쳐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많은 공적을 
 세워갑니다.

 그러나
 1617년 이이첨이 주도한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1618년 관직이 삭탈되고
 이후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어 그곳에..
 
 눈 덮인 산속마을의 사립문도 닫혀 있는
 오두막집에서 밤을 굽고 있는 시인(이항복)모습이
 측은하게 우리 앞으로 밀려온다.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얼마나 돌아갈 날을 바랐던가!
 그 마음을 상상해 본다.
 평소 해학과 유모가 뛰어난 인물이었던 그가
 자신의 고향 포천과 한양에서 자신을 보고파 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울분을 참았으리라..
 
 그러나 이런 시기도 잠깐 1618년 5월13일 새벽녘
 이항복은 63세로 유배지에 도착한지 3개월이 지나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 후손이 조선시대에 8명의 정승과 3명의 대제학,
 178명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경주이씨 가문..

 더구나
 약 300년 뒤 명재상 이항복의 10대손 6형제--
 이건영,이석영,이철영,이희영,이시영,이호영 등
 서인(소론) 명문가 서울출신 사람들

 나라가 어려울 때 그 스스로 제 역할을 다한
 百世淸風(백세청풍;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높은
 절개)의 정신은 '[익재-이재현(1287-1367)]
--[백사-이항복]--[6형제]'로 이어지니..
 
 가문의 아름다운 노래는
 참으로 아름다운 스토리로
 세세만년 이어질 것이다!.. 



◇중국 장가계(張家界)--장량[張良 : ?-
 기원전 186년, 자는 자방(子房)]이 은거한 산
 ..연필스케치로

 방배골 巢一齋에서
 놀공자 潭然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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