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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101] 炤井戱作(조정희작)-우물에 비친 나를 보고 장난삼아 짓다

박무용 2022-11-22 조회수 132

매미 羽化登仙(우화등선)..
번데기가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세계에서
날개가 돋은 매미로 탈바꿈하니..
신선(神仙)이 되어 하늘을 오른다.

"不對靑銅久    부대청동구
 吾顔莫記誰    오안막기수
 偶來訪炤井    우래방조정
 似昔稍相知    사석초상지''

「오랫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더니

 내 얼굴이
 기억이 안 나네.

 우연히 우물에
 방금 비친 모습은

 전에 어디서
 얼핏 본 듯한 녀석일세.」

고려 의종(제18대 국왕,재위1146년-1170년)때의
대문장으로 활약한 고려의 문신.시인.경기 여주 출생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지헌(止軒),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바로 술, 시, 거문고를 좋아한다는

''李奎報이규보(1168-1241)''의

 [炤井戱作(조정희작)-우물에 비친 나를 보고 
 장난삼아 짓다]라는

 고려 최씨 무인정권에서 몸을 사리면서 관직생활을
 이어가는 시인의 서글픈 가짜상을 그린 한시입니다.

 삼혹호선생-이규보는 1217년 50세 때
최충헌(고려 의종 때 4대 60여 년에 걸친 최씨
무인정권의 기반을 마련한  고려 후기의 무신집권자)
을 비판했다는 밀고로 정직되고 3개월 뒤에는
좌사간으로  좌천되고 이듬해에는 사소한 실수가
집무상 과오로 확대되어 좌사간마저 면직되고 말죠.
 
 그는 충격을 받고
 유교적 윤리에 입각해 일을 하더라도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권력자란 무신 정권의 독재자
 최충헌이었습니다. 이 일로 이규보는
‘보신(保身)만이 살 길’이라고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1220년 최충헌이 세상을 떠나고 최이[*(최이; 원래  
 이름은 최우였지만 나중에 최이로 개명하였다) - 
 최항 - 최의로 이어지는 3부자가 주인공이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최이라고 해도 다름이 없었죠
 1219년부터 1249년까지 30년간 고려왕조의
 실질적인 최고 통치자였던 최이]가 집권하면서  
 
 이규보는 다시 개경 정계의 한복판에 서기 시작하여 
 이제 그는 개인적인 의견은 접었고,
 모든 일을 '최이'가 원하는 대로 처리했으며
 
 덕분에 이규보는 이후 10년 동안 문예가로
 이름을 날리는 동시에 보문각 대제, 지제고 등
 숱한 벼슬을 지내게 됩니다.

 1228년에는 중산대부 판위위사로서 과거를  
 주관하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1230년 63세 때
 그는 또 한 번 유배되었다 복직되는 일을 겪었고, 
스스로가 얼마나 부덕한 사람인지를 통감하는
 위의 시를 남깁니다.
그는 출세 지향적이었고 보신주의로 한평생을 
살았다고 비판받지만,
 그러나 이는 독재 정권 아래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택한 생존 방법이라는 것을..  


 



◇새로운 이상의 세계는
   새로운 가치관을 지녀야..
《7년을 기다린 매미우화, 고구동산》
..연필스케치로

 방배골 巢一齋에서
 놀공자 潭然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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