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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간이식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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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 쌓인 잔설틈에 봄기운이 움트인다!..
“童子尋山採蕨薇 동자심산채궐미
盤飧自足療人飢 반손자족요인기
始知當日歸田客 시지당일귀전객
夕露衣沾願不違 석로의첨원불위”
「동자 산을 찾아
고사리와 고비 캐니
저녁 식사 절로 족해
배고픔을 면하네.
비로소 알겠네, 그 당시
전원으로 돌아온 나그네를
저녁 이슬이 옷을 적셔도
소망이 어긋나지 않았음을..」
조선중기 때 문신이요, 성리학의 대유학자 字가‘경호
’‘계호’ 號를“退溪(퇴계)’‘'퇴도’ “청량산인”으로 불린
“퇴계-李滉(이황)<1501-1570>”의
[春四詠(영)-暮(모)--봄, 네 수 중-저녁]라는
''퇴계''가 {산에 사철 기거하며,
넷 首씩 열여섯 首를 읊다}가운데 뽑은 한시입니다.
“퇴계-이황”은 경북 예안출생으로 1528년 28세에
진사가 되고 1534년 34세가 되어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셨는데,남보다 과거시험에는 늦은 편이었죠.
1568년,68세 만년에 *兩館大提學(양관-홍문관,
예문관의 겸임.대제학.정2품)을 지냈고,
이듬 해(69세) 고향에 은퇴합니다.
일생 동안 학문과 교육에 전심한 올곧은 학자로
후세 사림에 큰 영향을 미쳤죠.
※퇴계 李滉과 고봉(高峯)-기대승(1527-1572)과는
1558년(명종13년)부터 1570년(선조3년)까지
13년 동안 학문과 처세에 대해 1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1559년부터 1566년까지 8년 동안 사단칠정
(四端七情)논쟁을 벌임으로서 조선 유학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문학 콘서트 이벤트는
둘 사이 당대의 대유학자와 유학생의
신분이라는 것과 27세의 나이를 뛰어넘는
철학 문답형 담론은 조선 성리학 계승 발전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매서운 겨울추위를 견디고 맑은 향을 발하는
매화의 德性(덕성)을 사랑한 조선의 文人선비들!!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는 특히 退溪-李滉에게는 삶의 동반자요,
梅花를 통해 탈속한 초연한 자신을 규찰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꿈꾼 이상적 덕목을
두루 갖춘 존재였음을 인식하면서
우리
봄의 기운이 움트려는 산자락길을 걸어보시죠!..
◇산자락 둘레길/숲속의 속삭임-20
..연필스케치로
방배골 巢一齋에서
놀공자 潭然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