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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56세/간경화에서 간이식) - 500만원 지원

관리자 2023-08-31 조회수 69


 


2016년 정기검진을 했는데 간 수치가 일반인의 몇 배를 넘어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제 조심하면 괜찮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었다. 집주변의 의원을 다니며 몇 번 약을 먹다가 눈코뜰 새 없이 회사 일이 바빠지며 병원에 가야 하는 일도점차 소홀하게 되었다.


2018년 엄청난 무더위가 왔지만,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버텨야 했던 여름쯤에 ‘일이 없어서 두 달 정도 쉬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커가는 아이들은 어떡하나 또 생활비는 어쩌고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한참 돈이 들어가는 세 아이가 아른거렸다.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도 또 이제 어쩌나 하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생각하며 마트로 향하곤 했었다.


이러던 중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나는 그나마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렇게 술이 술을 마시는 


즈음에 갑자기 배가 불러오고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 걸음도 잘 걸을 수 없었다. 건강검진이나 한번 받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었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배를 누르며 아프냐고 묻는 의사의 말에 대답하며 설사약 처방을 해달라고만 말했었다. 의사의 눈빛에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싶었다. 3일 정도 약을 먹고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고 말할 때 의사 선생님은 ‘복수가 많이 차고 황달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큰 병원에 가라며 의뢰서를 써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인천성모병원 간담체내과에 진료를 받기 시작했었다. 인천성모병원 의사 선생님은 


처음 보자마자 피검사 결과를 보며 ‘간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씀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금 대학생 두 명과 중학생 아이에게 


들어갈 수업료만으로도 버거운데 이식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통원치료를 하고 때로는 알부민 주사를 맞고 비싼 리박트 약을 


열심히 먹어봤지만, 그때뿐이고 효과는 없었다. 가을쯤에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기 시작할 때 서서 일해야만 하는 내 다리는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었다. 빨리 움직이며 일을 해야 하는데 계단을 오를 때도 내려갈 때 내 다리는 걸음도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었다. 거기다가 복수까지 차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이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정말 힘들었다. 2019년 5월에 다니던 회사도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줄 수 없어 


그만 다니게 되었다. 병원에 다닐 때 버스를 타고 다니다가 그즈음부터는 다리에 기운이 없어 콜택시를 타고 다니게 되었었다. 간신히 기간제로 


일하고 있는 애들 엄마의 월급으로는 매달 들어가는 병원비, 검사비, 약값, 생활비, 애들의 수업료를 감당할 수 없어 카드빚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애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에는 그러지 않아도 입맛이 없어 밥을 먹기 싫었는데 앞일을 생각하니 더욱 밥맛도 없었다. 잠시라도 배고픔과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은 술뿐이었고 마시면 몸은 괴로워서 견딜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었다. 그렇게 올해 여름은 시작되었고 8월 21일쯤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119에 실려 인천성모병원에 응급실을 통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잘 걷지도 


못하면서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며 계속된 패턴으로 밤부터 새벽까지 헤매고 다닌다는 식구들의 말을 들었다. 간성혼수라 했다. 27일쯤 퇴원할 수 


있다 하여 집에 갈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는데 또다시 간성혼수가 오면 뇌에 이상이 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간이식을 결정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대학생인 큰아들이 공여자로 나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나도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하며 수술 날짜를 받았을 때는 두렵고 떨리기만 했었다. 드디어 그날 수술은 


진행되었고 중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2주 동안 무균실에 있다 퇴원하게 되었다. 수술받기 전 ‘우리 형편으로 간이식 수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수없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수술비용이 우리 집 보증금과 비슷한데 보증금을 빼서 수술해도 되나?’ 하는 가장으로서의 


두려움과 ‘보증금이 없어지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으로 아주 힘들었다. 다른 형제들도 형편이 좋지 않은 가운데 십시일반 


보태줘서 간신히 보증금을 빼지 않아도 수술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빠를 다시 건강하게 지킬 방법을 위해 선뜻 간을 


기증해준 아들과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용기를 주는 아내 그리고 늘 내 곁에 있는 식구들이 고맙기만 하다.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서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는 가족들을 위해서 힘을 내서 열 심히 약을 먹고 몸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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